“사태가 이렇게 흐르자 대북
정권 안에서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정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반발이 나타났다. 이왕 배제된 당파는 물론, 대북 안의 균열이
심각해졌던 것이다. 그중 선두가 윤선도였다. 그는 권신 이이첨을 정면으로 겨누며 독단적 정치를 비판했다. 그리고 그의 비판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광해군대 정치의 문제점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자발적인 이탈자 윤선도에 더하여, 허균은 폐모론에 적극적이었음에도 기자헌, 이이첨과
대립하다가 역모로 몰려 죽었다. 이렇게 광해군 조정은 자의, 타의로 비어갔다. 광해군 자신도 이이첨 일파의 전횡을 알면서도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보였다. 그 절정은 명나라 요청에 의한 파병에서 볼 수 있다. 궁궐공사로 파병 준비와 전략이 전무한 상태에서
파병한데다가 어설픈 기회주의적 투항으로 군사들만 잃고만 졸전이었다. 광해군 재위 3기에 포함시켜 다루었지만, 파병과 참패는 재정의 파탄과 군정의
방치가 빚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훨씬 깊고 오랜 원인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난맥 속에서 광해군은 정책과 사안에 대한 판단능력을 상실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손을 놓은 상황이 도래했다. 그리고 민심은 차츰 새로운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관람객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성군과 폭군의 이미지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잘 결합한 데다
대선정국과 맞아 떨어지며 바람직한 지도자상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덕이라 한다. 그런데 오항녕은 통념을 깨고 광해군의 실정을 매섭게
몰아붙인다. 실리외교라는 평가도 근거가 미약하다며 반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강하게 들이댄다. 지은이가 보기에 광해군 실정의
연원은 통치기간 내내 지속된 토목공사였다. 대동법 시행을 전국으로 확대하지 못한 것도, 후금과 벌인 전투에서 대패한 것도 결국 궁궐짓기에 국력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오늘의 우리상황을 보는 듯하다. 역시 역사는 거울이다.
전체 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