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2-11-29 17:06:54 | 조회수 | 1323 |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_ 너머북스, 372쪽, 1만7000원
전쟁의 후유증은 차차 아물어갔다. 조선 선조 말, 농경지 조사를 통해 불균등한 세금부과를 완화해 민생이 숨통을 텄고 탈루된 세금을 찾아 재정에 보탰다. 어느 역사에서나 보이듯 사리사욕을 공론에 감추는 자도 있었지만, 더 공정한 태도로 정치에 임하는 사람도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모두 새 국왕의 즉위를 축하했다. 1608년 2월 2일, ‘새로운 정치 초반(新政之初)’에 거는 기대가 봄기운과 함께 삼천리에 넘쳐흘렀다.
그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했던 1년여의 시간 동안 새로운 국왕은 친형 임해군을 진도로 귀양 보냈다가 강화에서 죽였고, 아버지의 유신에게 죽음을 내렸다. 희망은 있었다. 여러 사람이 민생과 재정 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추진했다. 이때 왕실과 집권 북인은 이권을 지키기 위한 본심을 드러냈다. 대동법 추진자는 하나둘 조정을 떠나든지 귀양을 갔다.
곧 백성의 성원은 신음으로 바뀌고 곳곳에서 궁궐 짓는 망치 소리만 들려온다. 광해군은 궁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새 궁궐을 지으라고 한다. 경연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실록 편찬은 요원할뿐더러 남기는 기록도 부실하다.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한다. 이이첨을 위시한 신하는 제 잇속만 챙기고, 광해군의 멘토 정인홍은 아집에 갇혀 있다. 전형적인 배제의 정치.
드디어 불안한 정치 때문에 북인 세력 안에서도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이탈하지 않은 자는 서로 싸운다. 윤선도는 이이첨을 비판하고, 허균은 동지였던 이이첨에게 죽임을 당한다. 관직도, 상벌도, 과거급제도 다 판다. 남은 것은 궁궐 공사다. 후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군량미까지 공사비로 쓴다. 심지어 심하전투(1619년 명나라에 쳐들어오는 후금에 대항하기 위해 명나라·조선 등이 참전해 벌인 대전투) 이후 전사자와 부상자 집안에 주라고 명나라 황제가 준 은(銀) 1만 냥조차 공사비로 쓴다. 이제 딱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은 차츰 반정 뒤에 살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바뀐다.
이렇게 민생과 재정의 안정, 건강한 정치, 풍요로운 문화의 창출, 변동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능동적 대처 등이 절박하고 중요했던 시기를 허망하게 보내버렸다. 아니 그냥 보내버린 것이 아니다. 조선은 악화된 채로 방치되고 엉켜서 나뒹굴고 있었다. 잃어버린 15년은 실기(失機)의 업보까지 남겨주었다. 그러나 반정(反正)으로 일어난 이들은 다시 이 땅에서 살아갔다. 그들은 다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바닥난 재정을 긁어모아 나라를 운영해야 했으며, 후세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야 했다. 무너진 사회의 기강을 세워 그래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했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했다. 그러다가 미처 여력이 없던 차에 닥친 침략에 허둥대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서 하루하루 이 땅에서의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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