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일제에 맞서 자주독립을 부르짓다 이름도 없이 산화한 전북 출신 무명의병 800여 명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됐다. <관련기사 2면>
대부분 장돌림이나 대장장이 등과 같은 민초였다는 게 공통점이다. 비목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초야에 잠들었다는 것도 그렇다.
이런 사실은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전북도, 광복회 전북지부,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이 손잡고 펴낸 ‘가장 치열했던 한말 전북의병사’를 통해 확인됐다.
새롭게 규명된 무명의병은 모두 845명에 달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진 이런저런 국가기록물에 이름은 남겼지만 인적사항이나 활약상 등이 없어 서훈을 추서받지 못한 인물 447명, 종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기록물에서 찾아낸 인물 398명이다.
이들은 대다수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생존자들 또한 살인, 강도, 내란 주동자 등으로 낙인찍혀 모진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전주출신 김법윤(1889~1908년), 김제출신 박영춘(생몰년 미상) 의병이 대표적이다.
1907년 충남 공주로 넘어간 김법윤은 동지들을 모아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이듬해 체포돼 교수형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나이 열아홉살, 생전 직업은 상업으로 파악됐다.
박영춘 또한 마찬가지다. 도내 일원에서 의병활동 중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 당한 것으로 규명됐다. 항일투쟁 전 직업은 쇠붙이를 다루던 대장장이로 밝혀졌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감방에서 순국한 의병도 적지 않았다. 익산과 군산 일원에서 무장투쟁 중 체포된 여학봉(익산·생몰년 미상), 의병자금을 모으다 임실에서 붙잡힌 제지업자 최봉갑(순창·생몰년 미상) 등이다.
이밖에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의병도 수 백명에 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활약상은 찾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한국고전문화연구원 최우영 사무국장은 “그동안 부대장급들은 기록물 발굴작업이 활발했던 덕에 대부분 공과가 확인돼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지만 평민이 주축인 일반 의병들에 대한 연구조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탓”이라며 “앞으로 그런 연구조사가 활성화 되면 이름없이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보다 많이 발굴되고 그에 합당한 명예 회복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측은 새로 확인된 무명의병은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도 관계자는 “후속 조사가 진행되면 많은 의병들의 활약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될 것이고 이경우 서훈 추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책자는 대한제국기 전후 전북의병사를 집대성 했다.
동학농민혁명기(1894~95년), 대한제국기(1897~1910년), 일제강점기(1910~45년)로 이어진 큰 흐름 속에 농민이 의병으로, 의병이 독립운동가로 변해가는 모습을 재조명했다. 이 과정에서 목숨바쳐 일제와 싸운 의병계열 독립유공자 421명의 활약상도 소개됐다.
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8-02-28 09:10:04 | 조회수 | 3596 |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4633 (새전북신문, 2019.02.27)
[■ 제99주년 삼일절]
도-광복회-고전문화연구원 이름없는 의병들 찾아내
대부분 일본군에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민초
전북의병사 재조명하고 독립유공자 서훈도 추서키로
대장장이 등 이름 없는 의병 831명을 기억합니다
부대장급 위주 기존 기록 보완
평민 주축 무명 활약상 찾아내
‘가장 치열했던 한말…’ 발간
대장장이, 제지업자, 상인….
일제에 맞서 대한독립을 외치다 이름 없이 순국한 전북 지역 민초(民草) 의병 831명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가 추진된다. 전북도는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광복회 전북지부,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무명 의병의 활약상을 찾아내 ‘가장 치열했던 한말 전북의병사’를 펴냈다고 28일 밝혔다. 이 의병사는 부대장급 위주로 작성된 기존 의병사에 비해 평민 의병을 대거 발굴해 포함시킨 게 특징이다. 지난해 8월부터 공훈록, 전북의병사 등 20여 종의 기록물에서 평민이 주축인 일반 의병에 대한 연구조사를 벌여 무명 의병들의 활약상을 찾아냈다.
전주 출신 상인 김법윤(1889~1908)은 1907년 충남 공주에서 동지들을 모아 무장투쟁을 하다 1908년 체포돼 19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장장이 출신 박영춘은 전북에서 의병활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익산과 군산에서 무장투쟁을 하다 체포된 여학봉(익산·생몰년 미상)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중 순국했다. 제지업자 최봉갑(순창·생몰년 미상) 역시 임실에서 의병자금을 모으다 체포돼 옥사했다.
이강안 광복회 전북지부장은 “그동안 부대장급은 기록물 발굴작업이 활발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지만 일반 의병에 대한 연구조사는 부족했다”면서 “이번 사업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에 의병 참가자들의 신원 회복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무명 의병을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 의병도 수백명에 이르는 만큼 후속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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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gye.com/newsView/20180228005979
100여년 만에 꽃이 된 ‘이름없는 의병들’
항일투쟁 순국 김법윤·박영춘 등/일본 문헌 찾아 인적사항 발굴/독립유공자 추서 공적 기리기로
을사늑약(1905년) 이후 전북 완주군 고산면과 임실군 일대에 의병이 출몰해 기병과 경찰관을 급파했다는 천안 분대장의 보고서. 전북도 제공 |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1905) 이후 일본군에 맞서 싸운 무명의 전북 출신 의병 800여명에 대한 신원이 추가로 확인됐다. 광복회 등은 목숨을 바쳐 일제에 저항한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해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기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광복회 전북지부는 최근 전북도,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함께 ‘한말 전북의병사 연구조사’를 진행해 전북지역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무명의병 831명의 신원을 새로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들 무명의병은 각종 의병 자료와 일본 측 재판기록 등 문헌을 바탕으로 찾아냈다. 그동안 국가기록물 등에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름이 있으나, 구체적인 인적사항이나 활약상 등이 없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받지 못한 447명과 현재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운동 참여자 384명이다. 이로써 그동안 항일운동에 참여한 전북지역 출신 의병들은 모두 125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생존자들도 살인, 강도, 내란 주동자 등으로 낙인찍혀 모진 고초를 겪다 숨졌다.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전주 출신 김법윤(1889~1908), 김제 출신 박영춘(생몰년 미상) 의병이 대표적이다. 김법윤 의병은 19세의 나이로 충남 공주에서 동지들을 모아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이듬해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그의 생전 직업은 상업으로 확인됐다. 박영춘 의병은 대장장이 출신으로 전북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방에서 순국한 의병도 적지 않았다. 익산과 군산 일원에서 무장투쟁 중 체포된 여학봉(생몰년 미상·익산), 의병자금을 모으다 임실에서 붙잡힌 제지업자 최봉갑(〃·순창) 등이 그들이다.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의병도 수백명에 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신원과 활약상을 찾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광복회와 전북도,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은 의병 발굴 결과를 토대로 동학농민혁명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전북의병사를 집대성한 책자 ‘가장 치열했던 한말 전북의병사’를 최근 펴냈다.
전북도는 이번에 새로 확인된 무명의병을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후속 조사를 거쳐 항일의병 신원과 활약상을 발굴하기로 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그동안 기록물 발굴작업으로 항일의병 부대장급 이상은 대부분 공과를 확인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으나 평민이 주축이 된 일반 의병은 연구조사 등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향후 연구조사가 활성화하면 이름없는 순국 애국지사들을 보다 많이 발굴하고 그에 합당한 예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는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순국선열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을 1일 오전 10시 전북도청 공연장에서 개최한다. 군산시내 일원에서는 3·5만세운동을, 정읍 태인시장과 김제 원평장터에서는 3·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시가행진 등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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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2/28/0200000000AKR20180228187000055.HTML?input=1179m
100여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전북 출신 무명의병 831명
김법윤·박영춘 등 의병 활약상 확인…독립유공자 추서 추진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일제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북 출신 무명(無名) 의병 800여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광복회 전북지부는 전북도,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함께 '한말 전북의병사 연구조사'를 벌여 항일운동에 참여한 전북 지역 의병 831명의 신원을 찾아냈다고 28일 밝혔다.
구체적인 인적사항이나 활약상 등이 없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 받지 못한 447명과 현재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운동 참여자 384명이다.
단체는 그동안 번역되지 않았던 각종 의병 자료와 일본 측 재판 기록 등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인적정보를 자료화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광복회는 설명했다.
당시 생존자들도 살인, 강도, 내란 주동자 등으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전주 출신 김법윤, 김제 출신 박영춘 의병이 대표적이다.
김법윤 의병은 19세에 동지를 모아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고, 박영춘 의병도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의 총칼을 맞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순국한 여학봉, 최종갑 등도 의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북도는 새로 확인된 무명의병을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제서야 인제야 선인들의 명단과 활약상을 찾아 송구스러우면서도 3.1절을 앞두고 더 많은 분의 얼을 기릴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의병들에 합당한 예우를 갖출 여러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디지털김제신문(2018.02.22) - 광복회 전북도지부, 한말 전북의병사 연구조사 발표.pdf
새전북신문(2018.02.22) - 항일의병 800여명 추가 발굴.pdf
새전북신문(2018.02.25) - [사설] 전북 의병운동 참가자 800명 신규 발굴.pdf
새전북신문(2018.02.27) - '아~독립이여'...초야에 잠든 무명의병 845명.pdf
서울신문(2018.02.28) - 대장장이 등 이름 없는 의병 831명을 기억합니다.pdf
세계일보(2018.02.28) - 100여년 만에 꽃이 된 '이름없는 의병들'.pdf
연합뉴스(2018.02.28) - 100여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전북 출신 무명의병 831명.pdf
전북도민일보(2018.02.28) - 3.1운동의 영웅 '전북 의병' 찾는다(전라도 천년, 전북도민일보 창간 30주년 기획).pdf
전북도민일보(2018.03.07) - 광복회 전북지부 '한말전북의병사' 발간.pdf